⚬ 사람이 만든 체계는 한 번도 완성된 상태가 된 적이 없다. 물건이나 건축물도 완성, 완공이 되었다 하더라도 계속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홍대, 성수동, 이태원 하면 각각의 동네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강남의 경우, 큰 대로변에 높은 빌딩으로 완성된, 외제차들이 다니는 이미지가 있지만, 본질을 뜯어보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도시 체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내가 연속해서 찍었던 장면들을 계속 해체, 분해하고 재조립하고, 다른 장소들을 결합하는 것이다.


⚬ 작품 <Entries Near_01~06>(2024)은 이전 작업들과 다르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건물과 창문들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창문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경계의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소외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건물의 외벽과 창문은 단순한 건축 요소를 넘어 인간의 삶과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창문을 통해 외부와 내부가 연결되듯,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로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연결성을 가진다. 그러나 작품 속 창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열되어 있으며, 내부가 명확히 보이지 않아 익명성과 고립감을 상징하고자 했다. 도시는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지만, 그 안의 개인들은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고립감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에도 진정한 내면을 알기 어렵고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 놓여 있을 때가 많다. "Entries Near"는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 총 32점의 작품 <PAD>(2023) 시리즈는 작년 부산에서 레지던시로 머물면서 제작한 것이며, 그동안 해왔던 작업에 변화를 주기 위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 공간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들을 콜라주 하여 캔버스 위에 다시 재현하여 그리는 과정에 대한 한계성을 느꼈고, 실제 공간과 디지털 이미지, 그리고 회화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상상했던 부산의 이미지와 실제 경험한 공간의 느낌이 매우 달랐고,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느낌을 캔버스 위의 물성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 광택이 날 정도의 매끈한 표면과 가상의 붓 자국이 담긴 이미지로 표현해 보았다.






⚬ 나의 작업은 평소에 주변 환경을 관찰하며 드는 생각과 감정을 메모하고,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습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축적된 글과 이미지의 조각들을 콜라주를 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생겨난 풍경은 그 당시의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이 투영된 곳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인간관계, 사소한 일 들에서 느끼는 모순된 감정들을 사진 콜라주로 재구성된 풍경에 우회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풍경 조각들의 반듯한 경계면은 서로 다른 각도로 얽히면서 비정형적인 형태와 기하학적인 요소들을 발생시킨다. 마치 섬처럼, 배경과 공간은 분리된다. 이는 예전부터 기하학적인 선과 도형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면을 반영하던 것이 이어져온 것이다. 구역을 나누고, 정리 정돈하는 방식으로 기억과 감정을 정제한다. 이렇게 정돈된 풍경 조각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기하학적인 집합체가 된다.

작품 <외딴 섬>, <찰나의 숲>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일부 어긋나고 단절된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 삶에서도 단절되고 깨어진 부분들은 늘 존재한다. 나의 이상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실망하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어긋난 조각들을 차분히 관찰하다 보면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될 때가 있다. 완전히 해결되거나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둘 것들은 두고, 다른 새로운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또 붙여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작품에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풍경을 담고 있지만, 자화상이기도 하면서 일기 같은 기록이기도 하다. (작가노트, 2022)






⚬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직접 가본 것 보다는, 대부분 어딘가로 이동할 때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선택한 것이다. 시선을 사로잡았던 장소와 사물들은 이전의 경험들과 무의식 중에 떠오른 기억들과 맞닿아 있었다. 넓게 펼쳐진 공사장과 공원의 모습, 작은 골목길과 늘어져 있는 사물들, 낮은 집들,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은 쓸쓸함과 따뜻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나들이로 많이 방문하는 장소도 어린 시절의 경험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했다.

이 장소들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지만, 작품에는 시각적인 이미지만 가져와서 내면의 기억에 따라 재구성했다. 서로 다른 풍경의 파편들을 연결하여 다각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의외의 위치에 의외의 요소들을 배치함으로써 외유(外遊)하듯 걸어다니는 풍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작품 속 풍경은 실제장소와는 다른, 어긋난 풍경이 되었다. (작가노트, 2022)








⚬ 작품  <미완성 퍼즐>, <미완성 퍼즐 2>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에 대한 낯설음으로 시작했다. 빌딩들로 빼곡히 채워진 도시 가운데 마치 퍼즐 조각이 빠진 것 같은 상상이 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공터는 아직 새 건물이 세워지지 않은 미완의 상태로, 흙더미와 쓰레기가 뒤엉켜있지만 풀이 무성히 자라며 그 나름대로의 생태계가 굴러가고 있었다. 자유분방하고 날것인 모습에는 아름다움도 존재했다. 이러한 공간은 미완의 과정을 겪는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대단하고 완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태도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노트, 2020)





2020 개인전 <### : 안과 바깥> 전시 서문(작업노트)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의 외벽, 담벼락 등은 공간을 이루면서 동시에 바깥과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간의 안과 밖을 이루는 경계들이 모이면 다양한 집합체를 이루게 된다. 각각의 공간들은 분리된 듯 하지만 상대적인 안과 밖, 통로로써의 역할이 생기면서 연관성이 생겨난다. 더 큰 단위의 공간을 형성하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일상의 공간들은 나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직접 공간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는 곳도 있다. 장소는 어떤 정해진 범위(공간) 내에서 쌓는 여러 가지의 경험을 통해 생겨나는 곳이다. 회화 작품도 캔버스라는 일정한 면적에 물감 등의 재료들을 쌓고 드로잉을 하는 경험으로 만들어지는데, 작가에게는 작품 자체가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어떤 사진, 이미지를 설명할 때 해시태그(#)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여러 개의 해시태그를 통해 하나의 이미지는 여러 단어(주제)를 얻게 되고,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들과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해시태그는 자신과 관련 없는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이미지와 관계망을 형성시켜주고, 타인들의 무리에 속하고 싶고 눈에 띄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도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해시태그로 사용하는 기호가 들어간 ‘###’은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벽돌무늬, 창문, 철망의 이미지를 기호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분리되어 있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고 공존하는 곳.





2020 개인전 <사이를 바라보다> 전시 서문(작업노트)

 ‘틈’, ‘사이’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이’.
 주로 빌라와 아파트가 있는 동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일정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풍경을 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풍경은 개인적인 고민, 심리, 감정을 투영하여 바라볼 여지가 많은 것 같다. 풍경 속에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고립되거나 널브러지고 파뭍힌 사물들─화분, 의자, 창문들, 버려진 쓰레기들 등─을 보며 마치 사물들이 서로간의 관계가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해보곤 한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뒤엉켜있어도 실제로는 서로 그다지 관계가 없는 단절된, 독립된 사물일 뿐이다. 소외나 군중 속의 고독 같은 쓸쓸함 등의 감정이 들었다.
 ‘사이’는 공간적인 의미 뿐 아니라 ‘시간’적인 의미도 있다. 건물이 허물어진 공터의 비어있는 사이-시간(작품 : 미완성 퍼즐),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본래의 살던 곳이 잠시 낯설게 느껴졌던 경험(작품 : 각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을 마치 풍경에 관한 일기처럼 기록했다.


▰ 올해는 구례와 하동에 자주 다녀왔다. 갈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그곳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서울,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보았던 북한산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북한산은 봉우리가 뾰족하고 바위산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지리산은 좀 더 초록초록한 나무가 빼곡하고, 곡선이 부드럽고 길게 느껴진달까. 어디를 둘러보든 산이 이어져있다.

 서울로 돌아올 때마다 점점 바뀌어가는 창 밖 풍경을 보며 늘 아쉬움이 가득했다. 산은 멀어져가고, 불뚝 솟아 오른 고층 아파트들이 다가왔다. 도시로 가까워질수록 푸른 산맥이 아파트로 변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키가 큰 아파트들이 줄을 지어있는 풍경은 마치 딱딱한 산맥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가끔 유난히 징그러운 아파트들이 있었는데(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건물 높이 뿐 아니라, 칙칙한 색감과 창문들의 크기와 개수로 인한 징그러움이 느껴지는 아파트.), 그런 아파트를 보며 뜨악했다. 닭장같이 보여서 저런 곳에서 살면 정말 안 행복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새 건물이고 신식이어도 고층건물이라는 그 자체의 디자인이 나에게는 별로다. 옛날의 낮고 작은 아파트들은 오히려 정감이 있고, 사람이 살만한 느낌이 더 든다.

 서울에서만 살았지만, 아파트보다는 빌라에서 주로 살아서 그런지 원래도 아파트에 살고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산을 많이 보고 드로잉을 하면서 자연을 많이 느끼다보니, 유난히 도시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들이 길게 이어져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외에 건물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였다. 구례와 하동에서는 낮고 작고 허름한 건물들이 그 자체로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서울에서는 그저 작게 여겨지는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각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아파트들은 길고 거대한 성벽처럼 표현하고 싶었고, 낮고 작은 가게와 집들은 파편으로 깨어지게 그려보았다.
▰ 각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 2019


▱ 매우 오래되고 녹슬어 보이는 아파트를 보았다. 이름은 ‘평화’, 1988년 2월에 지어진 아파트. 요즘의 아파트와 다르게 파란 지붕으로 덮여있는 그 낡은 아파트는 세월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그 뒤로는 비교적 깔끔한 아파트가 커다란 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비록 산의 경치를 다 가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깔끔한 아파트를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촌스러운 파란 지붕이 ‘평화’라는 이름에 걸맞다고 느껴졌다.

 일상을 살면서 마음 또는 상황이 평화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나 평화를 느끼기엔 매우 각박하고 불안한 날들이 반복되면서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평화는 녹슬었다.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자리한 ‘나의 평화’는 촌스러운 파란 지붕으로 남아 있다.
▱ 녹슨 평화, 2019
 

▰ 부지, 공터를 보면 왠지 퍼즐판 같다. 주어진 공간에 알맞은 크기로 건물이 지어질 것을 상상해서 그런 걸까. 건물과 건물 사이에 빈 공간을 보면 얼른 무언가로 다시 채워야만 할 것 같다. 갑자기 비어있는 흙바닥을 보면 어색하고 허전하다. 늘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도시 속에서 느닷없이 생니가 빠진 느낌이다. 흐트러져있는 공터 자체가 반듯한 퍼즐조각으로 맞추어 완성되길 기다리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미완성 퍼즐>은 주변 건물보다는 정리가 되지 않은 공터(바닥)가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무성히 자란 풀에 뒤덮힌 곳. 쓰레기와 함께 뒤엉킨 흙더미. 깔끔하지 않고 평평하지 않아 바닥의 날것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공사가 이루어져 깔끔한 새 건물이 채워지고, 자유분방한 날것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공터에 대한 나의 이러한 관심은 완벽하게 건물이 완성되기 전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끈다. 정해진 틀, 퍼즐판 같은 공간에서 잠시 자유로워지는 시간을 멈춰본다.
▰ 미완성 퍼즐, 2019

 


소유공간

최근 몇 년 동안 집을 자주 옮겨 다니며 지냈다. 여러 상황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고, 한 곳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감도 있었다. 낯선 동네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 동네와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집 근처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한적한 동네여서 그런지 자연스레 사람이 별로 없는 길이었다. 골목을 다니며 여러 집들을 보았고, 집집마다 각자의 모양대로 사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앞에 내다 놓은 화분들, 옥상에 널브러져있는 잡동사니들이 오히려 그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하나의 공간에 잘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것은 공간에 대한 애착심을 불러일으켰다.

걸어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들은 사진으로 남겨둔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하나의 ‘공간 조각’이 된다. 마치 퍼즐조각처럼 공간을 모으고 있다. 필요한 공간만 선택하여 오려내기도 하고, 오려낸 공간을 이어 붙여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점들이 모여서 면이 되는 것처럼, 그러한 공간들이 모여서 새로운 차원의 공간 덩어리로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알 수 없는 공간들을 만들어 내는 일은 나와 실재하는 공간이 특별한 관계를 맺어서 나오는 결과물과 같다. 이 공간들로 인해 내면의 불안감을 덜어내며, 나만의 특별한 공간을 얻은 것 같은 안정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이주연 작업 노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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